한국사람,
나 부터라도 '우리'라는 말이 입에 붙어서 너무 과하게 사용을 하고 있다는 것을 문득 느끼고 있습니다.
왜 우리라는 말을 이렇게 많이 사용하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중국어를 공부하다 보니 우리라는 말보다는 나, 너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고 우리라고 하는 말은 꼭 사용해야 할 때에만 우리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을 지칭할 때 사용 - 우리나라, 우리 집, 우리 가족, 우리 회사 등 친밀하고 독특한 인간관계를 강조할 때 사용 - 우리끼리, 우리 사이 등 외동이 같은 경우에도 형제가 없지만 우리 아빠, 우리 엄마라고 합니다.
외국어에는 나의 아빠, 엄마, 나의 나라, 나의 집, 나의 가족들 등 나가 기준이 되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내, 우리 남편, 우리 동생, 오빠, 언니라고 꼭 우리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붙여서 말을 하면 상대방도 거부감 없이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우리들이 주로 사용하고 있는 말의 주어는 거의 다 '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무의식적으로 우리 일본은, 우리 000는 이라고 말해 버립니다. 듣고 있자면 많이 불편하지요. 동양사람들은 집단주의 문화권에 살고 있고, 서구의 사람들은 주로 개인주의 문화권에 살고 있어서 개인을 더 중요시하고 있고, 동양 사람들은 집단을 중요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집단주의 문화권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국이나 일본 사람들은 우리라는 주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지만 특이하게 한국사람들은 집단주의 문화권에 속하고 있지만 말의 주어가 주로 '우리 000'라고 표현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가 어릴 때 버스를 타게 되면 앞, 옆, 뒷좌석의 승객들이 웃으면서 아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말을 걸어 줍니다.
아이가 뭐라고 대답을 하면 승객들의 반응이 너무 좋은 것을 느끼게 되고, 내가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길거리 신호등 앞에서 아이를 보게 되면 귀엽고 예뻐서 뭐라고 말을 걸고 싶어 집니다. 이런 것들이 한국사람들은 인정이 많아서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한국사람들의 집단주의 동기가 다르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집단을 좋아해서 자발적으로 곁에 있는 사람들을 완전 남이 아닌 나와 같이 호의를 표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옆에 있는 아이가 예쁘다고 말을 걸거나 쓰다듬거나 볼을 만지게 되면 절대로 안된다고 합니다. 일본사람들이 자주 쓰고 있는 말 중에 머리와 허리를 구부리면서 본인의 일로 민폐를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죽을뻔한 사람을 구조해 주거나 도와주게 되면 우리나라 사람은 '구해줘서, 살려줘서 너무 감사합니다, 기쁩니다, '라고 하지만 일본 사람들은 민폐를 끼쳐 드려서 너무 죄송합니다 라는 말을 합니다.
일본사람들은 집단 주의 문화권에 살고 있지만 집단으로부터의 비난이나 처벌들을 매우 무서워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집단 따돌림(집단)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에 본인은 민폐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한테 부과된 사회적 역할을 본인이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까지도 민폐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대학을 졸업하고도 그 집단이 본인에게 두려움을 주기 때문에 취직을 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일본인들은 자신의 행위가 사회적 기준에 미치지 못하다는 것을 느끼면 극심한 불안을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집단주의를 가지고 있는 한국과 일본이지만 그 동기가 아주 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한국인은 자발적인 민족
일본인들은 비 자발적인 민족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화병이 많고 일본은 대인 공포증이 많다고 합니다. 개인의 이익과 집단의 이익이 일치했을 때, 즉 평등했을 때 집단주의의 객관적 조건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집단이 객관적으로 운명 공동체라는 것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그 집단 구성원들에게 운명 공동체라는 자각이 있어야 탄생할 수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의 우리라는 것은 운명 공동체라는 자각에 기초한 일심동체의 집단을 우리라고 정의합니다.
대표적으로 가족을 보면 운명 공동체이기에 가족 중 한 명의 기쁜 일과 슬픈 일에 온 가족이 함께 합니다. 가족 내에서 개인의 이익과 집단의 이익이 일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관계도 평등합니다. 이런 것을 기초로 일심동체라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자주 사용하고 있는 말이 '우리는 하나이다' 정말 어디에 사용해도 이상한 말이 아닙니다. 이런 집단에서는 니 것과 내 것이 다르지 않고 따지지 않습니다. 너의 마음 내 마음 따로 없고 하나의 마음으로 융합된 그런 집단입니다.
전쟁 영화를 보면 끈끈한 전우애로 결합된 집단, 과거 독립운동의 집단들, 가족 같은 친밀한 집단도 이러한 일심동체의 집단을 형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느 정도 친밀해지거나 잘 알게 되면 서로 눈빛만 봐도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된다고 합니다. 표정만 봐도 그 사람의 속마음을 알게 된다고 하지요.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이 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국사람들은 너와 나는 서로 마음이 잘 통한다 라는 말을 자랑스럽게 합니다. 서로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일사천리로 잘 통하는 사이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것들이 우리가 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아주 옛날부터 한국사람들은 우리 주의라는 의식이 강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던 듯합니다.
당연히 우리를 가장 귀중하게 여기게 되고 우리를 지향하는 사상, 민족의 집단의식 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기초해서 나타나는 심리현상, 정신현상이 바로 우리 주의 심리주의 일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주의 의식에 기초하는 심리현상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그것이 공고해지고 습관화되어서 특성으로 된 것이 우리 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독특한 한국인만의 우리 성은 외국인들에게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한국인들의 이런 강력한 집단주의 성향을 가진 민족은 아직까지 찾을 수가 없습니다. 한국인들에게만 고유한 그런 우리 성은 한국인들의 심리적 특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이런 우리 성에는 어떤 이익들이 있을까요?
1. 우리는 복지제도 혹은 사회안전망 역할을 한다 전통적으로 한국인은 개인의 생존을 개인에게 떠 맡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공동으로 책임을 져왔고 어려움에 처한 우리 구성원들을 기꺼이 도우면서 살아온 것입니다. 구휼제도, 마을공동체 제도 등이 있습니다. 마을에 굶은 사람이 있는데 그를 돕지 않는 사람에게는 치욕감을 느낄 정도의 강한 제재를 가하도록 하는 규정이 향약에 정식으로 명문화를 해 놓았습니다. 한국인이 식량을 잘 비축하지 않는 것도 우리의 이런 문화와 관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2. 우리는 삶의 의미와 가치를 제공해 준다.
3. 우리는 용감성이나 대담성을 갖게 해 준다.
4. 우리는 근면성 혹은 부지런함을 갖게 해 준다
5. 우리는 강력한 집단치료 효과를 제공한다. 집단치료의 효과 - 동병상련의 처지에 있는 집단 혹은 우리가 발휘하는 치료 효과입니다. 직장에서의 갑질의 스트레스는 직장 동료들이 제일 잘 치료를 해줍니다.
학생들이 학교 생활하면서 받게 되는 상처들은 학교 친구들이 제일 잘 이해해 주고 마음을 알아주기 때문에 집단 치료의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이태원 참사에서의 슬프고 아픈 마음을 위로해 주고 알아주는 것은 똑같은 피해를 당한 유족들입니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피해자의 이름도 알려주지 않았고 유족끼리 서로 연락하는 것을 강력하게 방해를 해서 온 국민들에게 원성을 사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국사람들의 우리 성을 이해하지 못하여 국민들이 아픔을 당했을 때 이것을 서로 찢어 놓아서 더욱더 국민들을 아프게 하고 원망하게 만들고 있는 이 정부가 한국인인데 이국인인 것처럼 행동하고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동병상련의 처지는 비록 일시적이고 제한적이지만 우리의 화를 가능하게 해 줍니다.
마음의 상처는 우리가 가장 잘 치료해 준다, 집단치료 효과의 원천은 우리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행복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이 관계와 공동체에 있다는 것을 많은 심리학자들이 연구 결과를 내놓고 있습니다. 건강한 공동체나 관계 속에서 살아갈 때 사람들은 행복함을 느끼게 된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한국인은 먼 옛날부터 평등하고 화목한 공동체에서 살아왔습니다. 계급사회에서도 절대다수의 평민들이 평등하고 화목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왔다면 우리 성이 형성되고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품앗이, 두레, 향약등이 있습니다.
한국은 5천 년 역사 동안 거의 1000여 회에 달하는 크고 작은 침략을 당해왔고 그중에서도 100회는 전면전쟁을 하면서 국가적 민족적 단위의 우리 성을 강화시켰습니다. 한국의 역사, 언어, 문화 등을 습득, 체득하면서 사회화, 문화화가 되어서 우리 성이 아주 강하게 체득이 되면서 우리 성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한국인들이 인간관계에서 나타내는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관계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외국인들과 많이 다른 점입니다. 우리 관계란 무엇일까요? 모두의 마음이 통하는 한마음, 일심의 관계입니다. -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
비계산적 관계 - 외국인들은 계산이 철저합니다.
더치페이 마음을 주고받는 관계 -상대의 마음을 알아준다.
행동보다는 마음을 더 중시 마음을 알아주는 관계 - 내 마음을 설명하지 않아도 당연히 알아줘야 한다(부부)
경계가 없는 관계 - 아이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것 등 일상적인 스킨십 관계 -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 곁에 붙여둔다 인간을 구하라! 이수현 씨가 일본 지하철에서 몸을 날려 일본인을 구하고 본인은 사망한 사건을 떠 올려 봅니다.
사람 살려!라는 말을 들으면 만사를 제치고 뛰어 들어서 사람을 구합니다.
인간 중심성의 표현 어떤 교리나 규칙 등에 얽매이지 않는 성향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성이 좋다. 인간적이다. 인간미가 있어. 인간적인 관계, 인간답게 살고 싶다, 사람부터 되어라, 인간 같지도 않은 x, 네가 사람이냐? 등의 말들을 보면 인간, 사람을 중심에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도덕규범을 잘 지키는 한국인 지하철이나 버스의 경로석이나 노약자석에는, 잘 앉지 않고 노인이나 임산부, 아이에게 자리를 잘 양보합니다.
의적을 좋아하는 한국인 홍길동, 일지매, 임꺽정, 장길산과 같은 의적들은 도덕적이고 의로운 범죄자, 우리들을 위해서 헌신했던 인물들을 좋아합니다. 힘이 아닌 도덕에 굴복한다. 한국인이 힘이 부족해서 지게 된다면? '어디 두고 보자'라고 하면서 진심으로 승복하지 않습니다.
한국인들은 항복한다라는 말을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 문화에서 승패는 힘이 아니라 도덕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도덕적으로 나보다 위에 있을 때만 승복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예전부터 우리 문화의 관계에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한국인은 낙천적이다. 정작 한국인은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외국인들은 한국인들이 대단히 낙천적인 사람들이라고 말을 합니다.
외국인들은 한국이 35년간이나 일본의 지배를 받았고, 비극적인 동족상잔의 전쟁까지 겪은 나라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한국인들이 매우 낙천적이라고 하며 놀라움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한국인들은 낙천적이며 밝고 역동적이다라고 외국인들은 한국인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음주가무의 민족이다. 한국인들이 먼 옛날부터 음주 가무를 즐기는 것으로 잘 놀았다는 것은 낙천성을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잘 노는 것은 불가능하듯이 비관적인 민족이 잘 논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풍자와 해학의 민족이다.
한국인들은 전통적으로 풍자와 해학을 즐겼습니다. 드립의 민족입니다.(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은 풍자형 패러디는 한국 인터넷 문화의 백미로 평가를 받고 있음)
한국인 낙천성의 원인은 무엇일까? 한국인은 인간을 믿고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을 긍정적으로 대하며 좋아합니다. 한국인은 자신감이 충만한 민족입니다. 우리의 민족은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창조해 온 민족이기 때문에 한국인은 힘이 약할 때가 아니라 도덕이나 문화 수준이 저열할 때 열등감을 느낍니다.
외침을 당할 때마다 전 민족이 단결해서 용감무쌍하게 싸워서 외적들을 물리쳐온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인은 가장 수준 높은 집단인 '우리'를 이루고 살아왔기에 자기에 대한 믿음이 아주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최고의 뒷배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
우리가 되어서 살아갈 때 제일 행복한 것입니다.
한국인들의 우리에 대한 열망을 한국인이 바라는 우리는 가족 공동체나 마을 공동체 같은 작은 우리가 아니라 국가와 민족 차원의 우리나라가 인류 차원의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인이 꿈꾸는 큰 우리, 즉 국가나 민족 차원의 우리가 이상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완전한 사회, 한국인이 상상하는 완전한 사회는 국가가 우리가 된 사회, 민족이 우리가 된 사회입니다.
한국인의 이상사회에 대한 열망은 국가 혹은 민족이 우리 집단이 되면 실현될 것입니다.
"김태형, 한국인이라면 공감 100% , 한국인의 민족심리 강연" 후기